“웃기는 사람이네.“
이유리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그지? 춘식아.”
”에이. 춘식이가 아니라 준식이라니까.“
옆에 있던 남경이 투덜거렸다.
”아니. 괘씸하잖아. 지가 선배면 선배지.“
“냅둬요. 왜 밥먹다가 열 올리고 그래요.“
”이게 그냥 넘어갈 일이야?”
“그럼 어쩌게요. 그리고 누님은 오늘 얼굴에 왜 이렇게 힘을 줬데요? 사람 긴장되게.”
이유리는 흠칫하며 손거울을 꺼냈다.
“왜. 이상해?”
“아니. 평소보다 분칠이 혹독해서 그러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본인 결혼식인줄 알겄네.”
“이, 이게 요즘 유행하는 메이크업이라서.”
“그 정도면 문신도 덮이겄는데요.”
”됐거든요. 밥이나 드세요.“
이유리는 춘식에게 핀잔을 주며 화제를 전환했다.
“어쨋든. 저 사람은 그냥 고맙다고 받으면 되지 주는 사람 무안하게 거절을 하고 그런데?“
임다유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커피가 몸에 안받으신다는데.“
”그걸 믿어? 언니. 이건 그냥 언니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래. 이유리는 이 말을 간신히 속으로 삼켰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아무리 눈치가 없는 그녀라도 이 정도 깜냥은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언니를 만만하게 본거야!“
“에이. 설마.”
”아냐. 이유가 뭐가 됐든 나쁜 놈인건 확실해!“
살짝 흥분한 이유리가 테이블을 ‘탕’하고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흠칫한 임다유가 주변을 살피며 속삭였다.
”목소리 낮춰, 유리야. 아직 식사하시는 선배님들이 계신단 말이야.”
”그, 그래? 몰랐어.”
임다유는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분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거야.”
”그려요. 뭔 사정이 있겄죠.“
옆에서 있던 춘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임다유, 이유리의 동기, 곽준식.
통칭 ‘춘식이’.
세련된 외모와는 다르게 말투에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반쯤 묻어나는 이 남자는, 자신을 째려보는 이유리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밥을 크게 한술 떴다.
“사정은 무슨!”
“보는 눈이 있어서 몸 사리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누구 눈치를 본다는거야?”
“아니 왜. 여자 친구가 보고 있다거나.”
“여자친구?”
임다유가 관심을 가졌다.
“그려요. 식당 안에 지켜보는 사람이 딱, 버티고 있으면 관리를 할 수 밖에 없으니께. 남자들은.”
“춘식이 너, 막 갖다 붙일래?”
“아녀요. 내가 아까 딱, 봤는데.“
춘식이 숟가락을 손가락을 들고 흔들었다.
”다유 누님이 스벅 커피를 가지고 딱, 테이블 앞에 섰을 때 말이여. 고개가 팍, 돌아가서 눈을 못떼는 사람이 두 명 있더란 말이죠.“
”그게 누군데?“
”일단 저쪽.“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저 분은…“
긴 생머리를 뒤로 올려 묶은 여자가 보인다.
일행은 덩치 큰 남자 둘과 상대적으로 왜소한 안경남 하나. 총 4명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저기 긴 머리 선배님?”
“엉. 식판에 미역국을 퍼 담다가 딱, 째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단 말이지.”
“흐음.”
이유리의 눈이 빠르게 상대의 위 아래를 훓었다.
외모는 평균. 몸매는 상급.
스타일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임다유가 비비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됐어, 저정도면 해볼만해.”
“응?”
“언니는 귀엽고 이쁘니까. 또 퓨어한 매력이 있잖아. 남자들은 그런데 환장하거든.”
“뭐?”
임다유의 얼굴이 홍다무 처럼 붉게 물들었다.
“야! 무슨…소리야.”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던 임다유가 고개를 픅 숙이며 이유리에게 소근거렸다.
“그런거 아냐.”
“언니. 나 언니 옆에서 2년 넘게 같이 도시락 까먹은 사람이야. 눈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안다고.“
“아니라니까.“
부인하는 말과는 다르게 임다유는 벌게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유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니가 그 동안 저 사람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한 줄 알아?“
”며, 몇번이나 했는데?“
“100번은 했을거야.”
임다유가 붉어진 얼굴로 가자미 눈을 떴다.
“거짓말.”
”몰라. 셀 수도 없어. 어느 부서일까. 이름은 뭘까. 나이는, 결혼은 하셨을까. 어휴. 귀에서 피날 뻔.“
”내가 그랬어?“
”그럼. 오죽하면 내가 커피라도 사서 갖다드리라고 말해줬겠어?”
”그건, 고마우니까 답례라도 하라는 거였잖아.“
”그렇게라도 저 사람이랑 계기를 만들라는 뜻이었지.“
”그, 그런 뜻이었어?“
”그래. 바보 언니야. 남자를 돌맹이 보듯 하던 사람이 눈을 반짝 반짝하면서 관심을 가지는데, 모르는게 바보지.“
”아니라니까…“
“됐고. 춘식아. 다른 한 사람은 누구야?”
”저기.”
춘식의 숟가락이 이번에는 반대편 구석을 가리켰다.
“앗.“
”아.“
”음.“
세 사람의 말문이 동시에 막혔다.
”……직원이 맞는거지? 저분.”
이유리가 검지로 한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추수국. 그녀는 머리를 한쪽 어깨로 넘긴 채 손에 든 갈비를 야무지게 물어 뜯고 있었다.
“이쁘다.”
“응. 이뻐.”
조막만한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하얀 피부에 갸름한 턱선.
왠만한 연예인 뺨을 두 번은 후려칠 법한 외모였다.
”말도 안돼. 허들이 이렇게 높다고?“
이유리는 자괴감을 느꼈다.
자신의 강점을 외모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건 규격 외. 도무지 비빌 수가 없다.
갈비 양념이 입에 묻은 채로 밥을 뜨는데도 이쁘다니!
맞은편에 앉은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휴지를 건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아니. 저런 사람이 왜…“
뭐가 아쉬워서?
이유리는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입을 헤벌리며 감탄하고 있는 임다유가 보였다.
이런 바보. 지금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춘식아. 너 촉 좋잖아. 어느 쪽인 것 같아?“
”으음…“
춘식이 침음을 흘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난 저쪽?“
”말도 안돼!“
이유리는 추수국이 있는 쪽을 흘겨보며 말했다.
”왜? 저렇게 이쁜 사람이?“
”누님. 그렇게 말하면 다유 누님 체면이 쫌.“
”나, 나는 그런거 아니라니까.“
”아니. 안어울리는건 사실이 잖아. 남자가 무지하게 꼬일 것 같은 비쥬얼인데 굳이?”
”느낌이 그런 걸 어째요? 그리고 사람 일을 모르는거죠. 여자는 또 나쁜 남자한테 끌리는 법이니께.“
”나쁜 놈이라니?“
“나쁜 놈이 아니라 나쁜 남자요. 위험한 향기를 물씬 풍기는. 이를테면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 같은.“
”그게 누군데?“
”아니. 다이하드를 몰라요?“
”몰라. 그보다 나쁜 남자인지, 아니면 그냥 나쁜 놈인지 니가 어떻게 알아?
”알죠. 대충은.“
춘식이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
”영상이 떳잖아요.“
“영상? 무슨 영상?“
”저 선배님 나오는 영상이요.“
”몰라. 못봤어. 혹시 그, 방화범 제압하는건가?“
”아뇨. 그거 말고. 누님들 동기 단톡방에 올라 온 링크 영상은 못봤나보네요.”
그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재생시킨 후 테이블 위에 보기 좋게 내려놓았다.
”헉.“
”아.“
”오우.“
영상이 시작되기 무섭게 신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영상 제목은 ‘해운대 구남로 정의 구현’.
딱 봐도 위험해보이는 거한.
조금도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날리는 남자.
피 터지게 치고 박기 시작하는 두 남자의 끔찍한 싸움을 보며 이유리가 손을 입으로 가렸다.
“뭐야. 무섭게 이런 걸 갑자기 왜 보여줘?”
“이 덩치, 유명한 조폭이래요.”
“아이, 그게 뭐가 어쨋다고…“
”그리고 이분.”
춘식이 손가락으로 뽀글머리를 가리켰다.
“누군지 모르겠어요?“
”응?“
”이육사 경위님이잖아요.“
”어.“
이유리와 임다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정말이네?”
“응. 이육사 선배님이야.”
“이 분 요즘 엄청 핫해요. 신상도 제법 털려서 경찰이라는 것도 소문이 났고.”
”그래? 왜 난 몰랐지?“
”누님들이 유튜부에 취미가 없어서 그래요. 쇼츠나 동영상이 꽤 많이 떳는데. 그 중에서도 유튜버 ‘규오’가 촬영한 실시간 방송이 완전 영화처럼 뽑혀서…“
”아!”
임다유가 휴대폰을 양손에 쥐었다.
“어, 어떡해.”
영상 속의 이육사가 비틀거린다.
전공기에게 일격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하지만 이육사는 임다유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반격을 시작하며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냈다.
”이야. 이 부분은 다시봐도 기가막히네요.”
춘식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근성이 진짜 대박이지 않아요? 여자가 위험에 쳐하니까 딱, 나타나서 상황정리. 저런 무식한 주먹을 맞고도 반격하는 것도 그렇고, 현실판 다이하드가 따로 없다니까요. 내가 이 분 수영서에 계시는 선배님이라고 하니까 동기들이 다들 부럽다고…”
“아팠겠다.”
“네?“
임다유가 고개를 들었다.
입꼬리가 떨리고, 눈시울이 잔뜩 붉어진 것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이다.
“선배님, 엄청 아팠겠지?“
”네? 네. 그랬겠죠? 뒤지게 맞았으니께.“
”아픈데. 계속 싸우셨구나.“
결국 눈이 물기가 어렸다. 춘식은 괜히 오해라고 받을까 싶어 주변을 살피며 급히 티슈를 뽑아 건냈다.
”아이고. 또 터졌네.“
“흑. 어떡해. 피나.“
상대를 쓰러뜨린 이육사가 고개를 든다.
피투성이에 지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다, 그의 몸이 무너지는 장면을 끝으로 영상이 끝났다.
춘식은 휴대폰을 회수하며 헛기침을 했다.
“여튼. 이런 하드보일드한 남자는 알게 모르게 사람을 끌어 당기는 매력이 있다니까요.”
“매력은 개뿔. 이런 사람을 만났다가는 심장이 남아나지 않겠다. 매일이 ‘코드 제로’라는 소리잖아.”
코드제로.
긴급 신고가 발생했을 시 관내 지역경찰을 비롯한 형사, 여청 등이 모두 출동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코드 제로는 허위이거나 실제보다 부풀려져 신고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살인이나 강간 같은 초강력 범죄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상황의 특성상, 초동 조치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지역경찰, 즉 지구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수 밖에 없는 신호라고 하겠다.
“코드 제로. 오. 어울리네요, 뭔가.”
“웃겨. 그냥 폭력적인 사람인 것 같은데 뭘.“
”에이. 그건 아니죠.“
“언니. 역시 저 사람은 꽝이야.“
”응?“
”절대 빠지면 안돼. 잘못 꼬이면 마음 고생만 죽어라 하고 언니만 아프다구. 알았지?”
“웅.”
임다유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 있어요?”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임다유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한 이유리가 화색을 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선배. 아니 오빠.“
”응. 잘지냈지?”
옆에 있던 춘식이 토하는 시늉을 했다. 인기척을 느낀 이유리가 춘식의 어깨를 팔꿈치로 툭 찔렀다.
“하하. 오늘도 사이가 좋네.”
“헤. 원수죠 뭐.”
“그래. 근데 누나는 왜 울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누가 괴롭힌 건 아니죠?“
류재하는 짐짓 화가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유의 어깨를 슬쩍 두드리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누나.“
그는 쿨하게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춘식은 류재하가 보이지 않을 때 쯤 입을 삐죽거렸다.
“허이구. 잔반 버리러 가면서 똥폼은.“
”왜그래? 멋있기만 한데.”
“누님. 저런 놈이 진짜 위험한 놈이에요. 제비 냄새를 폴폴 풍기는구만.”
“향수 냄새 밖에 안나는데?“
“그건 누님이 코 밑에 분칠을 빡세게 해서…“
콱!
이유리가 춘식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야!“
”디질래? 이게 오늘따라.“
”아오. 손가락 힘이 뭐 이렇데?“
”끼불지마라.”
“아이고. 맘대로 혀요. 그 정도로 살점이 뜯어지겠슈? 더 모질게 비틀어야지.”
“꺅!”
“얘, 얘들아.”
이유리는 셔츠를 끌어 올리며 배를 까는 춘식을 보며 못볼 것을 봤다는 듯 눈을 가렸다. 임다유는 소란을 피우는 두 사람 때문에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씨끄럽군.”
백남훈은 턱을 괴며 코를 찡그렸다.
“실습생들인가?”
“누가여?”
“저쪽…음. 추수국. 내가 휴지를 주지 않았나?”
“휴지?“
”아니다. 빨리 먹어라.“
백남훈은 볼따구에도 묻어난 양념을 보며 말을 아꼈다.
추수국은 씹고 있던 것을 꿀꺽 삼켰다.
”우음. 부장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아니.“
”아까부터 말이 없으시길래.“
”난 식사할 때는 원래 말을 안하는 편이야.”
“혹시 속이 안좋으신건 아니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아니, 아까도 화장실 가셔서 한 참 뒤에 오시길래.”
“신경꺼. 추수국.”
“아 넵.”
그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한란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향했다.
“…엉망진창이군.“
그는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곱씹던 백남훈은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카테고리 없음